시의 도시 펑제(奉节)현, 도시와 기업 홍보대사로 소환된 이백

From:한국 종합 뉴스통신-뉴스핌에서 발췌Author: 2023-04-07 14:45

 산봉우리에서 해가 뜨고 지는 장강은 낮시간이 유난히 짧다. 다시 어둠이 내리고 장강의 양쪽 강안 언덕은 점점 해발 고도가 높아졌다.

 간밤에 얼마나 더 이동했는지 다음날인 1월 24일 아침 눈을 뜨니 150미터 길이에 1만 7000톤의 육중한 산샤(三峽) 유람선 장강3호는 백제성(白帝城)으로 유명한 충칭(重慶)의 펑제현 펑제항에 정박해 있었다. 사람들은 백제성이 백제산에 있는 고성으로 산샤 협곡 유람의 백미라고 했다.

 “산샤(삼협)는 장강 구간 3개의 협곡이라는 뜻이죠. 이곳 백제성 아래쪽의 구당(瞿塘)협곡과 우산(巫山)의 우산협곡, 이창(宜昌)의 시링(西陵)협곡을 합쳐 산샤라고 합니다. 이중 구당협은 중국 10위안짜리 종이 돈에 인쇄된 명소예요. ”

 쓰촨(四川)성 이빈(宜賓)에서 온 중국인 유커는 산샤를 이렇게 소개한 뒤 경치로 볼땐 하늘이 공중에 좁고 파란 개울 처럼 보이는 우산협곡이 가장 빼어나며 이창 구간 시링협곡은 특히 산샤댐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1월 24일 아침 식사후 백제성 탐방을 위해 배에서 내려 장강의 부두 다리를 건너 강안 뚝으로 올라서는데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자오파바이디청(早發白帝城, 조발백제성)’네 구절이 대문짝 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이백의 싯 구절을 인용한‘채색구름 사이로(彩雲間)’라는 이름의 여관, 마을 어귀 회관 건물 담벼락의 이백 시와 이백이 돛단배로 지났던 산샤의 구당협 도안이 들어간 10위안짜리 종이돈 조형물. 백제성으로 들어가는 길목과 마을 전체가 이백의 시로 도배가 되다시피했다. 마치 마을 골목 어귀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와 함께 이백의 시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분위기다.

 충칭의 펑제현 백제산에 자리한 백제성은 본래 유명한 삼국지의 고장이다.

 촉한(蜀漢)의 유비(劉備)는 오나라에 패해 피신하다가 병을 얻어 백제성에서 생을 마감한다. 유비는 숨을 거두기 전 공명(孔明)에게 아들 유선(劉禪)을 보좌해 통일 대업을 이룰 것을 당부한다. 유비는‘아들이 재목이 아니면 공(제갈공명)이 권력을 취하라’고 말한다.

 삼국지 무대인 백제성은 이백의 시의 고장이며 예로부터 시인의 성지였다.

 이백과 두보(杜甫),백거이(白居易),소동파(蘇東坡),백제성이 있는 펑제현엔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몰려들어 만 수의 시를 남겼다. 펑제현 때문에‘산샤에 가면 반드시 시가 있다’는 말이 생겨났다. 2017년 중국 정부는 펑제현에 전국에서 유일한‘시의 도시’라는 칭호를 내렸다.

 이백의 시‘조발백제성’을 모르고 발을 들이면 백제성은 영락없이 주마간산격 여행이 될 듯 싶다.

 야랑(夜郎)이라는 곳으로 유배를 가던 도중 이백은 이곳 백제성에서 사면 소식을 접한 뒤 백제성 아래 구당협을 거쳐 천리길 장강 중류쪽 후베이(湖北)성 강릉(江陵)으로 되돌아가 구속에서 풀려난 가뿐한 기분으로 만고에 유전될 시‘조발백제성’을 지었다. 이백의 이 시 한 수는 백제성을 수백년에 걸쳐 최고의 인문 관광지로 만들었다.

 이백이 시에서 노래한 장강 양안의 야생 원숭이들은 지금도 옛날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펑제현의 장강과 백제성 여행객들 곁을 맴돈다. 장강3호 유람선 승객들이 통과하는 구당협을 이백도 나룻배를 타고 지났다고 한다.

 이백의‘조발백제성’은 유비와 촉한을 기리는 백제묘 입구 주변에도 꽤나 비중있는 관광 거리로 조성돼 있다. 펑제현 백제 고성의 백제묘 관광 관리사무소는 백제성이라는 흰 대리석 표지석과 함께 이백의 이 시를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장쩌민(江澤民) 등 역대 공산당 지도자의 필체로 각각 커다란 대리석에 새겨 기념하고 있다.

편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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