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문묘

From:Author: 2024-01-04 15:28

대성전내부

 분주문묘는 966년에 건설되었고 금나라 때 복수되었으며 원나라 때부터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절정기에 이르렀다. 청나라 때 원래 명나라 번왕(藩王) 경성왕부(庆成王府)를 바당으로 개축하였다. 규모 면에서 재건된 청나라 분주(汾州)부 문묘의 제사 장소와 학궁의 면적은 35,000㎡ 이상에 달했으며 산둥성 취푸공자묘(32,700㎡)보다 더 크다.

 청나라 때 분주부문묘가 거리를 따라 웅장한 패옥은 3개나 세워져 있었고 중앙에는 링성문(棂星门) 조합식 패방이 있고 양쪽 금자 하마(金字下马) 석비루가 따로 있어서 문화 금지의 신성함과 위엄을 부각시켰다. 링성문패방 밖에는 남북으로 세 개의 한백옥석교 병립하고 있었는데 최초에 경성왕부(庆成王府)가 어명을 영접하는 전용도로였고 다리 남쪽의 옛길은 '태화교'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7·7사변' 이후 분주부와 현의 문묘는 야만적 파괴를 당했고 소중한 문화재는 일본군에 의해 약탈당해 버렸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청나라 분주부 문묘는 산시성 문화재 보호 기관으로 지정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산시성 펀양 안싱석탄공업유한공사의 이사장 공상생(孔祥生) 은 펀저우부 문묘 재건에 투자하였다. 2008년 분주부 문묘 재건 공사가 문호 경승지에서 착공되어 2009년에 완공되었다. 분양시 당위원회와 시정부의 공동 지원으로 분양시 문호 경치 종합 계획이 전면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문호 호역은 이미 맑고 물결이 출렁이며 문봉 타워도 문화적 발전 단계에 들어섰다.

편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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